KAMC 2026 묵상훈련 자료 3

김기천 목사님


3-1. 영성 독서법 (1)

수도사 구이고가 소개한 렉지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말씀을 생활 속에서 경험하도록 돕는 네 단계의 방법입니다. 말씀읽기(Lectio), 말씀묵상(Meditatio), 말씀기도(Oratio), 말씀관조(Contemplatio)로 이루어지며, 여기서는 이를 ‘영성독서’라고 부릅니다.

영성독서는 하루 일정 시간을 정해 하나님 말씀을 경건하게 읽는 경건의 시간과 같습니다. 머리로 분석하기보다 마음으로 깨닫기 위해 읽는 것으로,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믿음 위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로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하루 30분 정도를 정해 네 단계를 모두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조용한 골방이나 새벽의 교회처럼 방해받지 않는 장소를 정하고, 복음서 한 권처럼 한 책을 정해 단락씩 이어 읽는 것을 권합니다. 주일 설교처럼 어느 자리에서 선포된 말씀이든 내게 깨달음을 주는 말씀은 모두 영성독서의 본문이 될 수 있습니다.


3-2. 말씀을 품어라

엊그제 점심 메뉴를 잘 기억 못하듯, 많은 성도가 지난 주일 설교 본문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육체의 배고픔에는 민감하지만, 영혼의 기갈에는 둔감해 말씀을 쉽게 잊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늘 기억하도록 다양한 장치를 주셨습니다. 손목과 이마에 붙이고, 문설주와 대문에 기록하고, 집에 앉을 때·길을 갈 때·잘 때·일어날 때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먹을 음식까지 말씀으로 구분하게 하셔서, 하루 전체가 말씀을 기억하며 사는 구조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이 바로 렉지오 디비나의 핵심인 말씀관조(Contemplatio)입니다. 그래서 영성독서에서는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는 시편 119편 105절을 자주 암송하며, 말씀을 삶을 비추는 빛으로 붙잡도록 권합니다.


3-3. 생활 속의 열매

영성독서를 한 시간 한다면, 나머지 23시간은 말씀관조, 곧 말씀을 품고 사는 시간입니다. 한 시간은 말씀의 씨를 받는 시간이고, 하루 전체는 그 씨가 마음 ‘옥토’에서 자라 열매 맺는 시간입니다. 결국 영성독서란 항상 말씀과 함께 사는 을 뜻합니다.

새로운 본문을 읽기 전에 “지금까지 품고 살아온 말씀은 무엇인가?”를 먼저 자문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 기억력 시험이 아니라, 실제 일상에서 그 말씀을 기억하고 의지하며 살아왔는지를 점검하는 질문입니다.

말씀은 인생 문제를 풀고, 고난을 견디고,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가 됩니다. 유대인들이 ‘쉐마’ 전통을 따라 말씀을 몸과 집, 문에 붙이고 살며 신앙·교육·문화 속에 깊이 심어 온 결과, 나라 없이 1900년을 견디고도 민족성을 지켰고, 오늘날에도 여러 분야에서 두드러진 영향력을 가진 것에는 말씀 중심 신앙의 힘이 자리합니다.


3-4. 말씀읽기 (1)

영성독서의 네 단계는 말씀읽기, 말씀묵상, 말씀기도, 말씀관조입니다. 이 중 첫 단계인 말씀읽기는 단순한 ‘성경 읽기’가 아니라, 잃어버린 성경의 권위와 읽기 전통을 회복하는 훈련입니다.

출판 기술이 발달하면서 성경은 수많은 책 중 하나처럼 취급되기 쉽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성경을 고문서·연구 대상으로 다루기도 하고, 신앙인들조차 흥미와 정보의 책처럼 읽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독교의 절대적 경전이며, “오직 성경” 위에 선 신앙의 기준입니다. 성경의 권위가 무너지면 기독교의 권위도 함께 무너집니다.

따라서 영성독서에서 말씀읽기는 성경을 다른 책과 구별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고, 경전 앞에 선 마음으로 읽는 것을 뜻합니다.


3-5. 유대인들의 말씀읽기 (2)

유대인은 율법을 회당의 궤에 엄숙히 보관하고, 꺼낼 때·읽을 때·다시 넣을 때 정해진 예식을 지켜 왔습니다. 궤를 열면 회중이 일어서고, 인도자는 찬양 구절로 선포하고, 율법은 마치 행진하듯 강대상으로 옮겨집니다.

낭독자는 운율·억양을 맞추어 정확히 읽고, 다른 한 사람은 발음과 음을 교정합니다. 손으로 직접 만지지 않고 ‘야드’라는 은 막대를 사용해 글자를 짚으며 읽습니다. 읽기 전후로 시편과 예레미야 애가 구절들을 암송하며, 말씀 앞에 깊은 경외를 표합니다.

이 전통은 모세·에스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핵심은 예식 자체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입니다. 영성독서의 말씀읽기는 이런 경전 의식을 오늘 우리의 성경읽기 태도 속에 다시 살려 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3-6. 말씀읽기 (3)

공동 예배에서의 말씀읽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읽는 이는 하나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심정으로 또렷하게, 정확히 읽고, 듣는 이들은 그 목소리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합니다.

회중이 말씀봉독 전에 일어서고, 읽은 뒤 함께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을 암송하는 것은 성경을 특별히 구별하는 좋은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 영성독서에서는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정해 매일 꾸준히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루 30분 정도, 복음서라면 한 단락(짧으면 두 단락)씩 천천히 읽습니다. 이때 입술은 하나님께서 빌려 쓰시는 입, 내 귀는 그 입술을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라는 의식을 갖고 읽습니다.

영성독서에서 말씀읽기는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수련입니다. 믿음이 ‘주파수’가 되어야 음성이 들리듯, “하나님이 지금 이 본문을 통해 내게 말씀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읽을 때, 글자는 살아 있는 말씀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3-7. 말씀읽기와 영성음악 (4)

말씀읽기를 더 깊게 하기 위해서는 음악의 도움, 곧 영성음악이 필요합니다. 원래 시편은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던 노래였고, ‘시편’ 자체가 찬양 노래를 뜻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문자를 소리와 결합해 말씀을 노래하며 영성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중세 교회는 그레고리 성가를 통해 말씀과 단선율의 음악을 결합했고, 설교보다 성가의 영적 감동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말씀이 음악과 함께할 때 더 깊이 마음에 새겨질 수 있다는 경험적 인식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악기와 음원이 개발되어 있지만, 기독교 영성을 깨우는 데 이 잠재력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돕는 묵상음악, 말씀을 가사로 삼아 암송과 의미를 돕는 말씀음악(chant)이 필요합니다. 이런 음악들이 바로 영성음악이며, 말씀읽기와 묵상을 도와주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3-8. 말씀읽기와 장면묵상 (5)

장면묵상은 성경 본문 안에 들어 있는 장면을 떠올리며 묵상하는 방법입니다. 네 단계 전체에 걸쳐 필요하지만, 특히 말씀읽기 단계에서부터 훈련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 본문 한 구절 한 구절을 들으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장소·인물·상황을 마음속 ‘화면’ 위에 떠올립니다. 장면이 떠오르지 않으면 다시 읽고, 다시 듣습니다. 글자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결국 하나의 장면으로 엮여 나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장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에는 두 장면이 겹쳐 있습니다. 하나는 마가가 어느 방에서 펜과 종이를 앞에 두고 진지한 얼굴로 이 첫 구절을 쓰고 있는 장면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들을 이 세상으로 보내시며 복음이 시작되는, 천상의 장엄한 장면입니다.

이어지는 2절에서 인용된 이사야의 예언은, 하나님이 아들에게 요한을 먼저 보내 그 길을 준비하게 하시겠다는 계획을 말씀하시는 비밀스러운 천상의 대화를 보여 줍니다. 이 천상의 장면이 선지자에게 계시되고, 수백 년 후 마가는 그 성취를 확인하며 “복음의 시작”을 기록합니다. 장면묵상은 이렇게 본문 안의 보이는·보이지 않는 장면을 따라 들어가는 훈련입니다.


3-9. Meditation과 Contemplation 차이

사전적으로 Meditation과 Contemplation은 모두 ‘묵상, 명상, 숙고’ 등을 뜻하지만, 영성독서 안에서는 분명한 구분이 있습니다. 핵심은 어디에 기록된 말씀을 묵상하느냐입니다.

구약 성도들은 두 가지 말씀을 갖고 살았습니다. 책에 기록된 말씀과, 마음판에 새겨진 말씀입니다. 책에 기록된 말씀을 펴 놓고 읽고 생각하는 묵상이 Meditation(말씀묵상)이고, 마음에 새겨진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살아가는 묵상이 Contemplation(말씀관조)입니다.

영성독서의 네 단계 중 앞의 두 단계(말씀읽기·말씀묵상)는 성경책을 가지고 하는 묵상, 곧 Meditation입니다. 목표는 글자로 된 말씀을 가능한 한 많이 마음판으로 옮겨 적는 , 즉 암기 수준까지 새기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인 말씀기도에서는 마음에 새겨진 말씀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기도 내용의 중심이 바로 그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인 말씀관조는 일상 속에서 그 말씀을 떠올리며 결정·말·행동을 할 때마다 적용하며 사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Contemplation입니다.

결국 영성독서 전체는 “책 속의 말씀을 마음에 옮기고, 마음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며, 그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삶”을 훈련하는 과정이며, 이 삶이 곧 하나님 말씀을 항상 묵상하는 입니다.# Untit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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